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

 




[image]
'''SK텔레콤 T1'''
'''SK Telecom T1'''
감독
최연성(iloveoov)
코치
박대경(MuJuk), 권오혁(Doctor.K)
테란
이신형(INnoVation), 조중혁(Dream), 김지성(Sorry)
저그
어윤수(soO), 박령우(Dark), 김준혁(Impact)
프로토스
김도우(Classic), 김명식(MyuNgSiK), 박한솔(Zoun)
1. 개요
2. 역사
2.1. 프로리그 시즌별 경기 내용
3. 평가
3.1. 팬과 안티가 가장 많은 팀
4. 前 멤버
5. 역대 성적
6.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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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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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 종목 팀이자 구단의 시초가 된 팀.
프로리그 7회 우승, 3회 준우승, 그랜드파이널 1회 우승, 통합 챔피언전 1회 준우승, 그리고 팀리그 2회 우승, 위너스 리그 1회 우승, 경남-STX컵 마스터즈 3회 우승, 플레이오프 최다 승 등 '''스타크래프트계에서 다른 팀들이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명문팀이었다.'''
kt 롤스터와 프로리그 초창기부터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 KT 롤스터와의 역대 상대 전적은 30:41으로 열세이나 커리어 면에선 KT 롤스터의 3회 우승보다 4회나 많은 7회 우승으로 앞서고 있다.
특히 2005년 전기, 후기, 그랜드 파이널, 2006년 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한 '''오버 트리플 크라운'''[1]으로 유명하며,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으나 다시 적극적인 영입과 유망주 육성을 통해 꾸준한 우승 후보로 군림하고 있는 팀이다.
역대 감독으로는 주훈(2003~2007), 박용운(2007~2012), 임요환[2](2012~2013), 최연성[3](2013년~2016년)이 있다.

2. 역사


일단, 팀의 역사를 거스르면 2002년아이디얼 스페이스에서 나온 감독 겸 매니저인 주훈과 선수 임요환 등이 주축이 되어 '''이윤열홍진호 및 여타 선수들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던 송호창의 아래에서 나와 동양 오리온[4]을 창단한 것이 그 시초이다.[5]
그 후 2003년 가을 동양제과[6]스폰서 계약이 끝나면서 '''4U'''라는 비스폰 팀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4월SK텔레콤이 인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7][8]
프로리그 초기이자 전성기였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그야말로 리그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팀으로, 당시 오버 트리플 크라운[9]의 영광은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많은 이들이 e스포츠 팀단위대회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준 팀으로 이 시기의 SKT T1을 꼽는다. 당시 주제 무리뉴 감독의 부임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정ㅋ벅ㅋ했던 첼시 FC와 비교되어 e스포츠계의 첼시로 불리기도 했다.[11]
그 당시에는 프로리그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개인리그 성적도 아주 좋았다. 또한 단일 개인리그 시즌에 가장 많은 선수를 출전시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2] 이 시기 SK그룹 2006년 신년 시무식에서 이사회와 임직원들에게 SK 그룹 내 최고의 성공 사례이자 모범 사례로 소개될 정도였다. 같은 스포츠 모기업 야구팀인 SK 와이번스도 분위기는 좋았는데, 기분 좋게 최종전까지 2위를 찍었으나, 어떤 로또의 삽질로 3위로 떨어져 오히려 욕 바가지로 먹은 건 안 자랑.
당시 팀 색깔은 임요환 - 최연성 본좌 라인과 많은 중견 테란을 가진 테란 제국. 때문에 '테란 1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13]
임요환 - 최연성 - 전상욱 - 고인규라는 테란 라인 완성은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저그프로토스도 저그 쪽은 박태민, 성학승, 프로토스 쪽은 박용욱, 김성제 등 강한 카드 하나둘 이상씩은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2006년 여름에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업을 달성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SKT의 시대는 임요환이 공군에 입대한 2006년 하반기에 끝난다.[14]
임요환의 공백도 문제였지만, 최강 최연성의 부진[15]이 겹친 데다[16] 임요환을 잇는 팀 내 기둥이 되어야 할 주장들인 박용욱과 최연성[17]은 불화설까지 뇌피셜이 나왔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펼쳐진 곰TV MSL 시즌1/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기간에는 개인리그 '''선택과 집중'''이라는 괴악한 방침을 들고 나왔지만[18], 정작 예선에 출전한 선수 7명 중 1명 빼고 다 떨어졌다. 온게임넷 쪽은 아예 전멸[19]. 이후 팬들은 이 사건을 두고 '''선택과 떡실신'''이라며 비꼬기도 한다. 관련 짤방 by 노동 8호. 게다가 애당초 목적이었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는 7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06 통합 챔피언전에서는 MBC GAME HERO에게 3:4 패배, 2회 케스파컵에선 16강 광탈하는 등 팀단위 대회 성적도 패망하면서 '''먹튀원'''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게다가 이 무렵에는 대부분이 개인리그에서도 제대로 활약들을 못 했고, 이는 2007년까지 이어진다.
이후 2007년 내내 프로리그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들로 일관하다가[20][21] 끝내 주훈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전원 해임되는 사태까지 맞게 된다.[22][23][25][26]
2020년 3월, 김성제스타로드에 출연해 코칭스태프 전원 경질 직전의 사정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당시 SK의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개인'''리그보다 '''프로'''리그를 '''강요'''했고, 김성제는 개인리그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시간이 적어 맵 숙지도 안 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고... 또한 선수 출전 방식도 오락가락이었다고... 이에 대해 선수들이 주훈 감독에게 불만을 호소해도 주훈에게 실권[27]이 없었는지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고 보다못한 익명의 한 선수가 T1 단장에게 내부고발을 해서 코칭스태프 및 프런트 전원 물갈이가 이뤄진 것이라고... 이렇게 따지면 원흉은 감독이 아닌 당시 SKT 수석코치 or 구단 수뇌부라는 게 정설.[28]
이런 와중이던 2007년, 웨이버 공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은 투신 박성준을 영입[29]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활약이 저조했다[30]. 참고로 이때 최연성+박성준 팀플레이#s-2가 나온 적도 있다. 물론 경기는 승. 결국 여러 문제가 겹쳐 1년 만에 박성준은 STX SouL로 다시 이적했다. 근데 박성준은 이적 후 참여한 첫 스타리그인 EVER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하며 골든마우스를 차지했다. 그것도 친정팀 SKT의 후배 도재욱[31]을 3:0으로 꺾고(...)...
당시 박성준은 하락세가 심하여서 많은 부진을 겪고 있었고, 그를 SKT에 영입하자고 제안한 서형석 코치가 성적 부진으로 팀에서 경질되고, 박성준 자신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고 언급하였다. 전팀이였던 MBC 게임은 박성준이 고참 역을 했지만, SKT는 박성준보다 고참들도 많았고, 팀 분위기가 박성준과는 맞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32]
이후 MBC GAME HERO의 박용운 코치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에이스 김택용을 영입, 이후 도재욱과 정명훈이라는 대형 신인들을 키워내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08-09 시즌 우승, 09-10 시즌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절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름 명문 게임단의 자리를 되찾는다.
2006년 팀의 기둥이자 주장이었던 임요환이 군 복무를 위해 공군 ACE에 들어가고 최연성, 전상욱, 고인규 등 주전 테란들이 모두 부진에 빠지자, 테란 명가라는 호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2008년 정명훈을 발굴해 낸 것이 위안이었으나, 정명훈 이후에는 스타 2 전환 후 영입된 이신형, 조중혁 이전까지 딱히 주목할 만한 테란 플레이어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2008년 MBC GAME 히어로에서 김택용을 영입하고, 팀 내에서 도재욱을 육성하고, 박용욱이 프로토스 코치로 활약하자 오히려 SKT는 테란이 아닌 토스 강팀으로 거듭났다. 김택용, 도재욱이 은퇴한 스타 2 이후에도 정윤종, 원이삭, 김도우 등 수준급 토스들을 여럿 보유했다.
이 팀의 주요 전력을 형성했던 도재욱 - 김택용 - 정명훈은 줄여서 '''도택명'''으로 자주 불렸으며, '티원저그' 탈출기를 찍은 박재혁이 살아나면서 한때 '''도택혁명'''이라는 그럴싸한 칭호도 생겼지만, 박재혁이 금세 그냥저냥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예전으로 회귀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개막을 1주일 앞둔 2010년 10월 9일, 임요환이 팀에서 나왔다는 소식이 공식 발표됐다.
2011 상반기 신인 드래프트에서 저그 게이머만 3명을 질렀다. 임홍규&신진영&손영학 세 명을 지명했는데, 한 명 정도는 토스를 지명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SKT의 저그 수집은 현재진행형이다. KT의 임정현 영입에 맞서서 SKT도 선수 영입에 나서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은 카더라 수준이다.
MBC GAME 히어로 게임단이 해체되기 전까지 자주 연습을 했던 듯하다. 두 게임단이 상호 협력 관계였다. 박용운 감독부터가 원래 MBC GAME 출신이고, KT가 웅진과 자주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2011년 4월 23일, 프로리그 10-11 시즌 5라운드 공군 ACE와의 대전에서 김택용이 2승을 해줘 팀이 이기는 데 크게 공헌을 했고 여러모로 기쁜 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김택용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웠는데, 팀이 이겼고 본인이 2승을 했음에도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낳았다. 김택용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 내용이 여러모로 논란이 되었다. 아래는 그 문제의 인터뷰 부분이다.
- MSL 탈락이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표정도 어두운 것 같은데.
▲ 너무 아쉽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준비를 더 많이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MSL 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팀에서 개인리그에 대한 배려를 너무 해주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사실은 오늘 프로리그에서 2승을 했지만 이기고 나서도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았다. 팀에서는 너무 프로리그만 생각을 하니까 선수 입장에서는 섭섭하다. 프로리그에서 지면 팀이 타격을 입듯이 선수도 개인리그에서 탈락하면 타격이 큰데 그걸 잘 몰라주는 것 같다.
인터뷰 전문은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겨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같은 날 정명훈은 인터뷰에서 연습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떨어져서 아쉽다고 말했고, 본의 아니게 비교되며 까이고 있는 상황이다.[33] 여하튼 타격이 꽤나 컸던 모양인지 팬들에게 "나에 대한 기대까지 해달라는 말은 못하겠다. 죄송하다."라고까지 하는 등, 2승이나 했지만 여러모로 씁쓸하게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그렇지만 김택용의 이런 모습을 절대 핑계라고 할 수도 없는 게, 평소에 이런 인터뷰를 안 하던 김택용이고 실제로 2승이나 하고도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직접적으로 팀에 대해 섭섭함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해당 팀이 선수들에게 프로리그 연습을 더 강제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추측까지 나온 상황이다. 장난으로 나온 '''선택과 집중'''이 실제로 있는 일인지 스갤, 특히 SKT 갤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거기다가 정명훈의 '''"연습 시간은 충분했지만"'''이라는 발언으로 인해 SKT T1이 일부러 정명훈을 더 편애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고, 댓글도 1000개가 넘어가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2012년 하반기에는 각종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가뜩이나 스1도 가뜩이나 간당간당한데, 스2에서 전패를 기록 중인 김택용의 부진과 함께 공군과 꼴찌 다툼을 하는 저조한 성적, 박용운 감독의 도발적 팀 리퀴드 인터뷰, 스2 연습생을 모집한 후 리플레이만 수집하고 축출했다는 의혹, 어윤수의 스2 래더 비매너 행위 등의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SKT의 이미지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박용운 감독이 "우리는 체계적인 팀이다."라는 드립을 쳤다가 되레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서 일종의 놀림감이 되는 일도 있었다.
가장 많은 우승을 거둔 팀이지만, 2015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콩라인 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2014년엔 자신들이 콩라인으로 만들어준 적이 많은 라이벌 팀 KT 롤스터를 상대로 준우승을 했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4번 연속 준우승을 한 어윤수, SSL 첫 리그에서 준우승을 한 후 팀원에게 지면서 2연준을 달성한 조중혁, 2015 KeSPA Cup Season 1에서 준우승을 한 박령우를 보면 왠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사람의 라이벌이었던 누군가가 생각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어윤수의 경우 3번째에는 김도우, 4번째에는 이신형에게 우승을 내주었으며, 조중혁은 2번째에 김도우에게 졌고, 박령우 역시 2번째에 어윤수에게 우승을 내줬다. 결국 팀킬 결승전 때문에 준우승이 많은 것이고 SKT 선수들이 결승에 너무 자주 가서 생기는 일이지, 우승을 못한 건 아니다.
스타2 군단의 심장 이후 개인리그 국내 프리미어 결승에 12번이나 진출하여 2016년 4월 기준 5회 우승[34] 7회 준우승[35]을 기록했다.
2015년 최종 우승을 차지하고 2016년 1라운드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계속해서 끝판왕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리그 우승을 하려면 티원을 이겨야...
하지만 2라운드 후반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귀신같이 3라운드에서 완전히 말아먹고 통합포시에서 라이벌 kt 롤스터에게 0:2로 패배하며 아쉽게 프로리그를 마무리해야 했다.
2019년 기준, 팀이 해체된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전 SKT 소속 게이머들의 모습에 '아 역시 명가답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유일하게 원년 멤버들 중 최연성이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며 우승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T1 역사의 산증인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

2.1. 프로리그 시즌별 경기 내용



3. 평가



3.1. 팬과 안티가 가장 많은 팀


스폰서 문제로 임요환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적도 안타까웠던 시절에는 호감 이미지가 있었지만, 우승을 가장 많이 한 전통적 강팀이다 보니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그 이상으로 많다. 한때는 팬이 아닌 시청자는 대부분 안티였을 정도이다. 특히 슈마 GO에서 이어지는 올드 CJ 엔투스 팬들, 김택용과 박용운 코치(현 감독)를 빼앗긴 MBC GAME HERO의 올드 팬들이 가장 원한이 깊었다. 내부 불화 떡밥이 자주 던져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KeSPA 회장사가 스폰하는 팀'''이다 보니 악역 이미지를 넘어서 '''악의 축 이미지'''가 강했다.[36] 사실상 스덕들은 악의 축으로 보고 있다.
여러모로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흡사하다. 나름대로의 순혈주의, 리그의 일정까지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리그 최고의 팀이라 불러도 될 정도인 커리어, 특히 SKT의 오버 트리플 크라운과 요미우리의 9년 연속 일본시리즈 우승은 포지션이 흡사하다.
감독부터 코치, 선수 모두 상대 팀에게 도발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팀이다. 하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저질러 놓고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붙이는 것도 까임의 주요 원인. 그 중 '''화승의 우승은 이스포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레전드급이다. 특히 KT는 서로 원한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극한다.

3.2. 영원한 라이벌, kt 롤스터


kt 롤스터와는 KTF 매직엔스 시절부터 결승에서 항상 맞붙던 라이벌 관계이다. 라이벌답게 임요환-홍진호구도최연성의 이중 계약 사건, 도발 대전 등 서로 엮여 있는 이야기가 많다. 이 두 팀의 대전은 모기업에 유래한 '통신사 매치'라고 따로 부른다. 스타 1을 넘어서 스타2에서도 롤에서도 이 두 팀 간의 더비는 언제나 팬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37]
상대전적은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 공식전,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30:41으로 열세이나 우승횟수는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는 정규 시즌 상대 전적이 KT 롤스터에게 상당히 많이 뒤져 있었으나 포스트시즌만 가면 KT는 SKT의 밥으로 전락했었다. 하지만 08년 이후로는 정규 시즌에서 SKT가 KT를 잡는 경우도 많아지고, 이영호가 들어오면서 포스트시즌의 KT가 SKT를 극복하는 일이 늘어났다. 하지만 브루드워 마지막 위너스 리그와 마지막 프로리그 결승에서 모두 김택용이 이영호를 상대로 마무리 승리하며 포스트시즌엔 SKT가, 정규 시즌엔 KT가 강세인 편이란 징크스를 이어갈수 있었다. 하지만 KT는 이영호 아니었으면 포스트시즌도 못 갈 성적이었을 정도로 이영호에게 너무 의존한 팀이기에 KT의 전성기시절에도 KT의 팬이나 SK의 안티를 제외하면 보통은 스타판 최강의 팀을 SKT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전혀 없다.
이와는 별개로 프로 지망생들 사이에서 SKT T1은 KT 롤스터와 함께 예나 지금이나 가장 입단하고 싶은 팀 1순위로 꼽힌다. 모기업인 SK텔레콤은 e스포츠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이며 연봉 계약이나 복지도 타팀들에 비해 후한 걸로 알려져 있다. 또 언론의 주목도도 크고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게임단이니만큼 인기와 명성을 얻는 것도 빠르다. 과거 스1 시절 드래프트제가 도입됐던 것도 연습생들이 하도 SKT와 KT에만 몰렸기 때문.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대입 수험생들이 대학 서열화하는 것처럼 게임단도 SKT와 KT를 1순위로 두었다고 한다.

4. 前 멤버



5. 역대 성적



5.1.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동양 오리온'''
연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3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2위
12
8
4
0
+23
우승
'''4U'''
연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3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7위
7
2
5
0
-3
진출 실패
'''SK텔레콤 T1'''
연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4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2위
10
7
3
0
+8
준우승
2004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새턴 5위
8
2
6
0
-5
진출 실패
2004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머큐리 3위
8
3
5
0
-4
진출 실패
2005
SKY 프로리그 2005 전기 리그
2위
10
8
2
1
+12
우승
2005
SKY 프로리그 2005 후기 리그
1위
18
13
5
0
+22
우승
2006
SKY 프로리그 2006 전기 리그
1위
10
7
3
0
+10
우승
2006
SKY 프로리그 2006 후기 리그
7위
10
4
6
0
+2
진출 실패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 리그
8위
22
9
13
0
-4
진출 실패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 리그
10위
22
8
14
1
-7
진출 실패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2위
22
14
8
0
+9
플레이오프
2008-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1위
55
35
20
0
+36
우승
2009-2010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3위
55
31
24
0
+15
준우승
2010-2011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1위
54
39
15
1
+41
준우승
201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1위
21
13
8
0
+18
우승
201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시즌 2
4위
21
12
9
0
0
플레이오프
2012-2013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
4위
42
22
20
1
+13
준플레이오프
2014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1위
28
20
8
0
328P
준우승
2015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1위
28
23
5
0
384P
우승
2016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6
3위
18
11
7
0
+4
222P
플레이오프

5.2. MBC GAME 팀리그


'''동양 오리온'''
연도
리그
경기


벌점
승점
결과
2003
계몽사배 KPGA 팀리그
탈락
2003
라이프존 KPGA 팀리그
탈락
'''4U'''
연도
리그
경기


벌점
승점
결과
2003
LG IBM MBC GAME 팀리그
5
4
1
0
+3
우승
'''SK텔레콤 T1'''
연도
리그
경기


벌점
승점
결과
2004
Tucson MBC GAME 팀리그
5
4
1
0
+8
우승
2004
MBC 무비스 MBC GAME 팀리그
7
4
3
0
-3
6위

5.3. 위너스 리그


'''SK텔레콤 T1'''
연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8-2009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3위
11
7
4
0
+8
준플레이오프
2009-2010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8위
11
5
6
0
-3
진출 실패
2010-2011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3위
18
10
8
1
+7
우승

5.4. 우승 기록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팀
라이프존 KPGA 팀리그 슈마 GO

'''4U'''

Tucson MBC GAME 팀리그 SK텔레콤 T1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팀
LG IBM MBC GAME 팀리그 4U

'''SK텔레콤 T1'''

MBC 무비스 MBC GAME 팀리그 슈마 GO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9 우승팀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8 STX SouL

'''SK텔레콤 T1'''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0 SK텔레콤 T1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0 우승팀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9 SK텔레콤 T1

'''SK텔레콤 T1'''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1 SK텔레콤 T1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우승팀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kt 롤스터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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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리그와 통합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1 우승팀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0 SK텔레콤 T1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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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폐지

6. 그 외


  • ||[image] ||
    과거에는 묘하게 기뉴 특전대 느낌이 나는 사진이 많았다. 임요환이 공군 입대 후 찍은 사진 중에도 비슷한 사진이 있어 아마 임요환이 이런 걸 좋아한 듯하다.
    • 개인리그에서 팀킬이 매우 재미없는 팀으로 꼽혔다. 특히 임요환, 최연성, 고인규, 전상욱의 4테란이 서로 맞붙는 테테전은 서로 조공, 헌납, 수면제 경기라고 놀림 당했고 팀킬 결승이었던 Spris MSL 최연성vs박용욱도 스코어만 3:2일 뿐 건질 경기는 하나도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세대가 바뀐 후에도 여전해서 스타리그 4강에서 정명훈vs김택용의 매치업이 3:0으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KTF - KT나 GO - CJ와는 대조적인데, SKT T1의 팀단위 리그에 주력하는 팀의 성향과 팀원 간 전략 공유가 잘 되는 분위기가 원인으로 추측된다. 반면 박정석, 홍진호, 조용호, 강민이 있던 시절의 KTF나 서지훈, 변형태, 이 있던 시절의 CJ 계열 팀들은 개인주의 분위기가 강해서, 개인리그에서만 만나면 평소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며 명경기의 향연이 벌어졌다. 반면 이 두 팀은 SKT와 달리 팀단위 리그에서의 최고 성적이 준우승일 정도로 죽을 쒔다.
    • SKT는 전통적으로 저그가 약한 팀으로 꼽힌다. 절대 무적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절에도 저그는 G.O와 에서 영입한 박태민 원 톱 체제였고, 2004년에 영입된 성학승도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개인전에서 부진에 빠졌다. 2007년에 영입했던 박성준도 SKT에 있을 때 한참 부진하다가 SKT에서 나가자마자 부활했다.[38][39] 박태민의 노쇠화, 성학승의 공군 에이스 입대와 박성준 방출 후에는 아예 저그들은 라운드 전패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부진을 겪었다. 이때는 아예 티원저그라는 말까지 나왔다. MBC GAME HERO에서 정영철을 영입하고 박재혁, 이승석, 어윤수 등을 키우는 노력을 하면서 09-10 시즌, 10-11 시즌에 저그 라인이 살아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테란, 토스 라인과 비교하면 어딘가 모자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역대 '순혈' 티원저그 중에 양대 리그에서 4강 이상을 한 번이라도 찍은 게 어윤수 하나이다.

    • 그러나 스타2에 들어서 스타1 시절 티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윤수, 박령우라는 원투 펀치가 2016년 4월 기준 17승 4패라는 ㅎㄷㄷ한 성적을 기록하여 더 이상 티저는 멸칭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Starcraft 2 StarLeague 2016 Season 1에서 박령우가 우승하면서 SKT 저그의 준우승 행진이 깨졌다.
    • 스타 1 시절 1군과 2군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서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오기가 무척 힘든 팀이었다고 한다. 2군 선수가 1군으로 승격하려면 2군에서 승률 90%를 찍어야 올라갈 수 있는데, 당시 연습생이였던 임홍규가 언급하기를 어떤 2군 한 명이 내부 랭킹 95%를 찍고 1군으로 승격해서 1군 선수들과 랭킹전을 돌렸는데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해서 다시 2군으로 내려온 적이 있다고 한다. 도택명에 박재혁, 정윤종, 어윤수, 이승석, 최호선 등 1군 멤버들이 쟁쟁한 것도 크지만, 도재욱이 이야기하기를 SKT 랭킹전이 정말 빡셌다고 한다. 현역 시절 SKT 1군 10명과 르까프 오즈 1군 10명, 총 20명이 랭킹전을 하였는데 1~5위가 SKT 선수들이었고 르까프 선수 중 이제동이 7위, 구성훈이 13위를 해서 그나마 상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2군 또한 랭킹전을 합동으로 했는데, 1위는 당시 르까프 소속이었던 하늘이 먹었고 그 외 상위 순위는 거의 SKT 선수들이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큰 오류가 있는데 이제동이 개인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통합 랭킹전에서 모든 선수들이 풀리그로 랭킹을 가리는게 아니었다고 한다. 당연히 양팀 1군들만 20명인데 하루만에 풀리그는 불가능할것이고 화승은 T1선수들과 T1은 화승 선수들과 랭킹전이 진행되었다. 즉 동일한 상대가 아닌 단순 승수만으로 정해진 랭킹이었고 그렇다면 당연히 화승 랭킹, T1랭킹을 구분해야지 공정한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명확한 진실을은 숨기고 이제동이 7위에 불과했다는 뉘앙스의 도재욱의 경솔한 발언에 이제동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시점에서 T1 에이스라인인 도재욱의 대 이제동전 승률이 33%에 불과하고 정명훈은 공식전에서 스타1이 종료될때까지 이제동을 아예 단 한판도 이기지못하고 7연패중이었다. 김택용을 제외한다면 다른 T1선수들 역시 비슷한 상태였었다. 김택용이 밝히 바에 따르면 연습에서 이제동에게 10연패 가량했다는 에피소드를 밝힌적이 있었을 정도로 연습경기에 더욱 강했던것들을 감안한다면 특히 상성 종족인 프로토스가 강했던 T1에서 이제동이 당연히 1위를 했을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수 있을것이다. 실제 이제동 FA사태 당시 T1이 이제동을 영입하려 했지만 이제동이 의리로 잔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당시 T1으로 갔었다면 도재욱은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물론 도재욱이 거짓말은 한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인 사실만으로 누구나 오해할 수있는 왜곡적인 발언을 한다면 그것 역시 거짓말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려울것이다.
    • 스타 1 시절 다른 프로 팀에 비해 복지가 좋다 보니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SKT 이적이 꿈이었다고 한다.
      • 식사의 경우 1군은 매일 2끼(11시 넘어 아침, 5시 저녁) 고기 및 생선 반찬 식사와 야식비 풀지원과 더불어 가정 도우미를 고용해서 선수들의 식사 준비를 해주었고, 선수들뿐만 아니라 직계 가족들한테도 통신비를 법인명으로 해서 무료로 해주었다고 한다. 유니폼 스폰서인 아디다스 협찬으로 분기에 한 번씩(1년에 4번)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선수 등급을 3등급으로 분류해서 최고 티어 200, 중간 150, 최하 100)의류 교환권을 제공받았으며, 먹을거리 역시 포카리스웨트로 유명한 동아오츠카의 모든 음료 협찬으로 인해 매우 풍족했고, 명절마다 명절 떡값 비슷한 수준인 선물을 선수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크라제버거 스폰을 받던 시절에는 크라제버거 상품권도 한달에 한번씩 지급됐었다고 한다.
      • 승리 수당의 또한 지급했는데, 프로리그에서 1승을 할 때마다 30만 원을 승리 수당으로 주었고, 라이벌 통신사인 KT와의 대결에서는 승리 수당이 50만 원이었다고 한다. 즉, 올킬로 KT를 잡으면 200만원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팀이 이겨야 받을 수 있었고, 3킬을 해도 역올킬을 당해서 팀이 지면 그 승리 수당은 날아간다고 한다. 승리 수당은 일단 50%를 먼저 지급하고 포스트시즌에 가면 그 승리 수당의 2배를 주지만 탈락하면 50%는 날아갔다고 한다. 이유는 선수들의 승리 의욕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고.
      • 숙소 역시 좋은 곳이었는데 삼성동에서 아파트 2개를 빌려서(임대료 월 1500만원 수준) 거주하다가, 이후에는 여의도 리버타워[40] - 역삼동 로얄팰리스 오피스텔 등 상당히 집값이 비싸고 시설이 좋은 곳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숙소와 연습실도 일반 팀들은 같은 공간이었던 것에 비해 SKT는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41]
      • 연봉은 임요환최연성을 제외하고는 고과를 칼같이 데이터로만 따져서 산정했다고 한다. 박태민은 최초 이적때 1억 2천 이었던 연봉이 성적이 부진하자 여타 다른 이야기 없이 ‘이게 지난 시즌 네 기록이야’하고 보여주고는 6천만원을 통보했고, 이듬해에는 코치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4천4백만원을 통보 받았다고 한다. 박태민전태규와의 방송에서 어윤수 박대경 등 팀에서 키우던 저그에게 출전을 양보해 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흔쾌히 양보를 했고, 팀 주장도 오랜기간 해왔는데 팀 생활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채 칼같이 성적만 가지고 연봉산정을 하는 부분 때문에 정말 무서운 팀이라는 언급과 각자가 각자의 밥그릇을 못지키면 바보되는 팀이라고 언급했다. 거기에 SKT의 코치 초봉은 44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스파키즈의 코치 초봉 1800~2000만원과 비교해도 그렇고, 스타1 팀리그 종료 후 8년 뒤 LCK에서 프랜차이즈 도입 후 처음 산정한 코치진 최소 연봉이 4000만원임을 생각하면 프로게이머 판에서 대우를 매우 잘 해주는 연봉이다. 코치 최연성이 9000만원, 코치 박용욱이 8000만원 받던 시절 코치 성학승은 5500만원이 너무 적어 가오가 죽는다고 팀을 나갔는데 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SKT는 의식주 및 통신비 해결에 연봉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복지를 잘 해주었고, 코치, 선수들에게 무제한 법인카드를 제공해줬었기 때문에 연봉은 그냥 은행에 두고 팀에서 제공하는 복지와 법인카드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었는데 그걸 박차고 나간것이었다. 전상욱(프로게이머)이 G.O.시절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집에 돌아갔다가 검정고시가 끝나고도 돌아오지 않자 연락을 했더니 G.O.에 스폰이 잡히면(당시 비스폰 팀이었음) 가겠다 했는데, 결국 박태민의 이적 때(이적료 2억) 함께 SKT로 이적을 했다. 박태민변형태에 따르면 SKT에 너무도 가고 싶어 했었다고..박지호(프로게이머)염보성 둘 다 방송에서 언급하기를 SKT는 당시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가고 싶어하는 팀이었다고...
    • 2군 또한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한달에 100만 원을 월급으로 주었고, 분기에 한 번씩 아디다스 의류 교환권 70만 원어치 협찬, 먹을거리 제공, 통신비 지원, 명절 보너스 등이 있었고 2군으로서 상상도 못할 대우를 받았다. 생활과 연습환경 자체는 1,2군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타 팀이 휴식일날 1군선수 연습이 필요하면 2군,연습생은 무조건 남아서 연습을 도와줘야 했는데, SKT는 휴식일이면 경기 있는 선수 제외하고는 다 나갔다고 한다. 팀 내에서 연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원이 칼같이 나갔다고 한다. 1군과 다른 점은 가정부가 없어서 연습생들이 잡일을 한 것과 식사의 질 차이 정도였다. 하지만 조작 사건이 터진 후로는 2군들은 한 달에 고작 40만 원으로 빠듯하게 살았고, 무급에다 보너스, 통신비 지원이 사라졌으며 의류, 간식 협찬도 줄어 1군에게만 지급하게 되었다. 게다가 2군은 1군 선수들의 간식을 옮기는 등 짐꾼 취급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코칭 스태프한테도 2군 선수들은 무시당하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결국 스타판이 점점 축소되면서 2군들은 거의 은퇴하게 된다. 당시 그나마 SKT와 비슷하거나 준하는 대우를 해준 팀은 대기업 스폰서 팀이었던 KT 롤스터CJ 엔투스 정도였다.
    • 프로리그에서 항상 최약체 팀으로 분류되던 공군 ACE에게 가장 안지는 팀이었다. 공군이 프로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2007년부터 2012년에 해체할때까지 공군이 티원을 프로리그에서 이겨본 횟수는 총 3번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공군이 프로리그에서 티원에게 이겨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절대 상성이었고, 그래서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9-10 시즌에서 공군이 티원을 4:2로 이겼을 때 공군이 창단 이후 처음으로 티원을 잡은 경기라고 엄청나게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라이벌인 KT 롤스터가 SK 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이 시작된 이후로 공군에게 프로리그에서 6번 붙어서 4번이나 패배하며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

    [1]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역대 최강팀을 꼽는다면 대부분이 2005년 SKT T1을 꼽을 정도. 그 당시의 SKT는 전성기의 최연성이 출전정지로 나오지 못했음에도 압도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2] 2013년 4월 3일에 수석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되었다.[3] 2013년 11월 6일에 수석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되었다.[4] 검색을 해도 리다이렉트 된다.[5] 당시 아이디얼 스페이스의 감독은 선수 개인 매니저 같은 느낌의 아류로 남아있었다. 아니, 최초로 시도를 했다고 보면 된다.[6] 임요환을 '''개인 연봉 1억원''' 으로 후원 했는데 이건 e스포츠 사상 첫 억대 연봉 선수로 발돋음 하게 된 계기[7] 과거 4U 시절엔 유니폼이 단 두 벌이었는데, 장신자들이 입는 큰 사이즈와 단신자들이 입는 작은 사이즈 각각 한 벌씩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시기는 주훈, 임요환의 개인 사비와 각 대회 상금들을 각출해서 운영비로 썼던 시기여서 정말 듣다 보면 눈물 나던 시기이다(...). 먹을 게 없어서 당대의 팬들이 팬 카페에서 반찬을 보내주기도 했고, 고장났는데 돈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기장까지 간 적도 있다.[8] 그리고 이 시기,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을 주겠다며 스카웃 제의를 한 여러 기업 구단도 있었다. 그 중 임요환의 평생 라이벌인 홍진호가 속한 라이벌 팀인 KTF 매직엔스도... 하지만 임요환은 "기업 팀이 늘어야 E스포츠판이 커진다."며 거절했고, 결국 SK텔레콤이라는 기업이 e스포츠 팀을 창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SKT의 창단 이후 기업들의 연속적인 e스포츠 구단 창단 러시를 생각해보면, '''임요환이 한국의 E스포츠를 만들었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여타 유튜브로 검색을 해 보시라. 거기서 이미 임요환이 있어서 스타크래프트 스타리그/팀리그가 생겼다는 말도 뻥은 아니라는 게 팩트로 증명된 사실이다.[9] 스카이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후기리그, 그랜드 파이널, 2006 전기리그 우승을 이르는 말.[10] 박태민은 본래 슈마 GO 선수였다. 동료인 전상욱과 함께 현금 트레이드로 넘어왔다.[11] 사실 개인리그도 이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기와 겹친 시기에는 굉장히 준수한 편이었다.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도 많았고, 팀킬한빛 소프트 못지 않게 초기에 많았다. EVER 스타리그 2005 박태민[10] 4위, 우주닷컴 MSL 최연성 4위, So1 스타리그 2005 임요환 준우승, 최연성 3위, CYON MSL 최연성 3위, 성학승 4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최연성 우승, 프링글스 MSL 시즌1 전상욱 3위, 박용욱 4위. 이는 EVER 스타리그 2005부터 프링글스 MSL 시즌1까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을 제외하면 SKT 소속 선수가 최소 1명 이상은 4위 이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웬만한 오버 트리플 크라운의 주역 선수들 대부분이 최소 1번 이상 개인리그 4강에 진출한 것도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다. [12] 프링글스 MSL 시즌1. 16명의 참가자 중 딱 절반인 8명이 SKT T1 출신이었다. 그러나 정작 팀킬로 하위 라운드에서 무더기로 탈락했고, 4강에서는 두 선수가 각각 마재윤강민에게 패하면서 결승에는 한 명도 올라가지 못했다.[13] 팀리그 시절 소울전에서 임요환이 1시 방향에 몰래 멀티를 했는데 캐스터가 "1시에 몰래 멀티 아직 못 봤나요! 테란 1시!"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 임요환이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 경기 내용과는 별 상관없고 그냥 의미를 알 수 없는 팀명보다 입에 잘 붙어서 쓰이게 되었다. 실제 테란 제국이기도 했고...[14] 공군 에이스 팀의 스타크래프트 입성은 그야말로 임요환이 입대하면 이후의 후배들을 병역과 현역 연장의 길을 만들어 주는 길이였다. 그야말로 스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15] 오피셜로는 샤워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는데, 이때부터가 원인이였다는 썰이 있다. 그런데 최연성이 이런 사고를 당한 때는 2007년 12월이었다. 이후 최연성은 이런 것도 마다한 채 이 무렵의 유일한 개인리그였던 곰TV MSL 시즌4에 출전했는데, 권수현을 이기면서 출발은 좋았으나, 승자전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같은 A조였던 신예 이영호한테 패하고 최종전에서 다시 만난 권수현한테 복수를 당하며 16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고, 얼마 안 가 최연성은 은퇴를 선언하였다. 아무튼 최연성은 이미 2007년부터 슬럼프에 빠진 상태였고, 또한 최연성이 저렇게 다친 시기를 고려해 보면 저 말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진다.[16] 따져 보면 비단 최연성 뿐 아니라 박용욱, 박태민, 김성제 등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모두 2006년 이후로 모조리 기량이 하락세를 보였다. 그나마 기량을 유지했던 건 테란 유저인 막내 전상욱, 고인규 정도였다. 이 두 사람마저 2007년을 넘어서며 하락세를 맞이했다. 뭐 물론 이후에 다시 한 번 재기를 한다.[17] 왜 주장이 둘이냐면, T1은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부터 '종족별 주장제'라는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서 팀원 전체를 아우르는 총주장까지 있었다. 이 제도는 주훈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전원이 해임되고 박용운이 새로이 부임하면서 없어졌다.[18] 양대 개인리그인 MSL온게임넷 스타리그 중 하나만을 선택해 참가하고, 나머지는 프로리그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프로리그보다 개인리그를 선호하는 대다수 e스포츠 팬들 입장에선 정말 이뭐병스러운 방침이었다.[19] Daum 스타리그 2007에서는 최연성만 진출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듀얼 토너먼트에서 광탈했다. 그런 최연성도 이 대회가 마지막 온게임넷 개인 리그였던 것이 함정.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2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투신 박성준이 이적해 왔고, 그나마 신예 오충훈이 있었으나 둘 다 얼마 안 가 방출되었다. 두 선수 모두 A조와 B조로 배정을 받았으나, 1승 2패로 나란히 광탈하는 면모를 보였다. 반대 방송국인 MSL은 적어도 매년 1명 ~ 3명은 꾸준히 출전 했었다.[20] 그 와중에도 개인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는 있었다.[21]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는 시즌 중반의 5연패 이후에 코칭스탭이고 선수들이고 팀원 전원이 삭발을 하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전상욱만은 유일하게 안 했는데, 전상욱은 이 무렵에 부친상을 당해서였다. 본인머리를 깎고 싶었지만 감독이 안 해도 된다고 했고, 또한 실제로 상중에는 머리, 손톱, 발톱 다 깎는 것이 아니기에... 이후 2연승을 하며 분위기가 상승하나 싶더니만 다시 5연패를 기록하는 등 안 좋은 모습들만 계속해서 보였고, 결국 SKT의 시즌 최종 성적은 10위. 만년 약체 '''이스트로'''와 군인팀 '''공군'''이 각각 11위와 12위를 찍어줬기에 망정이지 저 두 팀들의 원래 꼴들을 보면 SKT가 사실상 이 시즌 '''꼴찌'''나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바로 위는 라이벌 kt. 또 다른 하위권 팀들인 스파키즈와 위메이드 폭스도 잠시나마 하위권으로 같이 놀았었다.[22] 서형석 전 코치KeSPA 쪽으로 갔고, 이효민 코치는 위메이드로 갔다. 주훈 감독은 직후 온게임넷 해설로 이직했으나, 해설에서 금세 내려왔고, 나중엔 제8게임단 감독으로 복귀한다.[23] 그러나 이 시기에 신예들이었던 도재욱, 정명훈 등이 프로리그 개인전에 간간히 출전해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함과 동시에 좀씩 성장해 가기 시작하면서 세대교체를 하기 시작한다.[24] 초기에는 팬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다가 새로운 선수 발굴 및 개인리그 우승과 준우승, 팀리그 우승 및 준우승을 쌓아 올리면서 신임을 얻기도 했다.[25] 은퇴한 선수들이 개인방송에서 푼 썰에 따르면 당시 팀 분위기가 오버 트리플 크라운으로 절정의 성적을 찍어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 또한 자만에 빠져 연습과 할 일들을 게을리 했다고 말하였고, 팀의 맏형이자 구심점이었던 '''임요환'''의 입대로 인한 리더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고 크게 작용했다고... 임요환이 없으니 83 동갑내기 최연성과 박용욱 등 고참 선수들의 기싸움 등 선수들간의 파벌 다툼이 생겼고, 주훈 감독과 서형석 코치 또한 업무가 소홀해졌다고 한다. 팀의 구성원들 기강이 점차 당나라 군대가 된 판국에 이를 바로잡아 줄 구심점마저 자리를 비우니 팀이 급락할 수밖에 없던 것. 게다가 이 시기는 SKT의 주축을 이루던 올드들이 곰TV 세대, 즉 드래프트 세대로 불리는 신인들에게 슬슬 자리를 내주던 시점이니, 내우외환. 실상 그야말로 스타판 2016 ~ 2020년 현 삼성 라이온즈 및 2009년 ~ 2020년 한화 이글스의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SK 프런트는 '''주훈 초대감독과 서형석 코치를 경질'''하는 최고의 초강수를 뒀다고 한다. 이에 선수들 또한 큰 충격을 받고 본인들의 연습에 매진하게 된다. 그 결과 도택명의 성장, 임요환의 군입대 후 합류, MBC에서 코치를 하던 박용운[24] 감독의 리더십 등 다시 SKT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26] 사실 SKT의 암흑기는 그 전에도 있었는데, 그 시기가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준우승과 현대자동차 투싼 팀리그 우승 이후 스카이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열린 팀단위리그는 스카이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3라운드, MBC무비스 팀리그인데 SKT는 이 세 대회에서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4 2라운드에서는 새턴리그에 참가한 5팀들 가운데 5위를 기록해 머큐리리그 5위 팀인 헥사트론 드림팀과 3라운드 잔류 결정전을 치루었고, 3라운드에서는 머큐리리그에 참가한 5팀들 가운데서 4위를 기록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덤으로 그랜드파이널 진출도 실패한다. MBC무비스 팀리그에서는 8강 풀리그 총 성적이 4승 3패로 2위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3위 KTF 매직엔스, 4위 SouL, 5위 KOR과 같았지만 다른 네 팀이 세트승이 세트패보다 많은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SKT는 세트패 17개에 비해 세트승은 고작 14승 밖에 되지 않아 6위를 기록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이 동시기에 있었던 개인리그 성적도 EVER 스타리그 2004에서 최연성의 우승과 임요환의 준우승을 제외하면 당신은 골프왕 MSLIOPS 스타리그 04~05,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4에서 SKT 소속 선수는 단 한 명도 4위 이내에 입상하지 못했다. 막말로 초창기 T1의 암흑기가 빨리 온게 다행일지도....[27] 이 또 알고보니 주훈은 엔트리에 대해 관여를 하지 않고 오히려 컨디션만 보고 선수를 기용하였다. 결론적으로 실권은 단장이 아닌 여타 프런트들이 가지고 쑈를 한 것[28] 그래봤자 수석코치인 서형석이 뭘 하겠느냐겠지만은... 결과적으로 프런트들이 문제.[29] 웨이버 공시 이전 MBC 창단 멤버이기도 하니 팀의 레전드로 칭송받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근데 소속팀이 연봉 책정을 이상하게 하여 박성준의 불만을 들어주지 않아 이런 사건이 발단된 것.[30] 물론 박성준이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시기이긴 했지만...[31] 도재욱은 이 준우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못 들어갔다. 안습. 반대로 박성준은 골든마우스를 획득했고, 오랜만에 스타리그로의 화려한 복귀 후 마지막 우승이라는 점이라 어찌 보면 서로 안타깝다고 볼 수 없다.[32] 박성준보다 나이가 많았던 선수는 최연성, 박용욱, 박태민, 김성제, 성학승 등등 꽤나 수가 많았으며, 그나마 같은 나이의 선수로는 윤종민이 있었다. 근데 빠른 년생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진짜 같은 나이의 선수는 박대경. 그나마 어린 선수는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인 박재혁, 도재욱, 정명훈, 오충훈 같은 신예들이였다.[33] 물론 3저그 조여서 테저전 하나만 연습하면 됐던 정명훈과 리쌍이 있는 조에 염보성까지 있어서 테프전저프전을 번갈아 가며 연습해야 했던 김택용의 사정이 같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34] 이신형 2회, 김도우 2회, 박령우 1회.[35] 어윤수 4회, 조중혁 2회, 정윤종 1회.[36] SKT T1의 악의 축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37] 두 팀의 매치는 축구로 치면 한일전 프영전 못지 않은 '''자존심 매치''' 이다. 프로리그 시작 이래로 SKT 입장에선 반드시 KT는 이긴다 마인드였고 KT 입장에서도 다른 팀한테 다 지더라도 SKT한테는 절대 져서 안된다는 마인드 였기에 두 팀 간의 대결은 정말 뜨거웠다.[38] 타 팀에서 이적한 프로리거 이상의 선수들 중 먹튀였던 선수는 박성준이 유일하다. SKT 소속이었을 때와 그 외를 비교하면 실망 그 자체. 덕분에 SKT 팬덤에서 박성준은 반쯤 금지어다.[39] 그래도 박태민은 EVER 스타리그 2005 4위 및 2005 프로리그 전기리그 결승전 MVP, 곰TV MSL 시즌2 4강을 기록했고, 성학승은 CYON MSL 4위 및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절 팀의 팀플멤버로서 활약해주었다. 다만 박성준은 이 두 선수보다는 팀에서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40] 주민들 항의로 쫓겨나긴 했지만 나중에 LCK에서 라이벌 팀강동훈 감독의 부임 이후 여기로 사무실, 숙소, 연습실을 옮기게 된다. [41] 스타 프로리그는 기본에 이보다 규모가 큰 LCK까지 따져봐도 이렇게 운영하는 팀은 롤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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